춘천 오지마을 출동!
가야지요. 당연히 가야지요."
수화기를 든 사회정착계 홍석표 계장은 특유의 싱글벙글한 얼굴로 통화를 이어나갔다. 상대가 무색할 정도의 미소와 너털웃음으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그만의 대화법이다. 12월 6일, 세 번째로 정해진 미용 봉사를 막 논의하는 참이었다.
미용 봉사, 그 우연한 시작
호송 담당 박성한 계장은 스스로를 '농부'라고 부른다. 올 초 춘천소년원으로 전입 온 뒤로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집 근처 텃밭을 일구며 작물을 재배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가 농사짓는 곳은 춘천시 북산면. 행정구역으로는 춘천시지만 근처에는 잘 갖추어진 시설 하나 없는 마을이다.
편의점도 병원도 없는 곳, 그런 곳에 미용실이라고 따로 있을 리가 없다. 마침 농사 관련한 문의 사항으로 여러 차례 주민센터를 방문하던 중 박 계장은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 아이들이 와서 어르신들 머리를 잘라 드리면 어떨까?'
주민센터를 오가는 많은 이웃들, 대개가 어르신들인 이분들은 그나마 거동에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 센터를 드나들며 민원을 상담한다. 치매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엔 그러지도 못해 주민센터 민원 담당자들이 수시로 댁을 방문하여 형편을 돌봐드리고 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젊은 세대들은 어지간한 일로 고향을 찾지 않는 게 요즘 세태가 되었고, 이곳 북산면이라고 그리 다르지는 않다. 더구나 1973년 소양강댐이 들어선 후로 옛길이 수몰되면서 지금은 '육지 속 섬마을'이라고 불리는 조교리의 경우 아예 육로가 고립되어 있어, 화천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던가, 아니면 멀리 홍천군을 경유하여 약 1시간 이상 달려가는 우회로로만 들어갈 수 있는 동네가 된 지 40년도 넘었다. 오죽하면 10년도 전에 실린 관련 기사 내용이 '댐 수몰 후 40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일까.
북산면, 첫 번째 출동!
화창하기 그지없는 여름 날씨가 한창이던 날, 일행이 닿은 곳은 북산면 행정복지센터였다. 마을 주민들을 위한 각종 편의 시설이 여럿 갖추어진 그곳에는 마침맞게 미용을 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용 의자와 거울이 있어, 솜씨 좋은 미용사만 있다면 복지센터를 방문한 주민이 마음껏 머리를 자르고 펌을 할 수 있는 곳, 마치 미용실의 일부를 떼어다 마련한 듯한 '행복나눔터'라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신란주, 조연진 미용 교사들은 부지런히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용 교사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보조를 맞추어 거드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였다. 자격증을 취득하긴 했지만 기껏해야 새로 들어오는 신입생들, 아니면 머리가 더부룩하게 자란 재원생들을 상대하였던 게 전부였던 아이들이었다. 아무래도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어르신들의 머리를 만지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큰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미용 공간이며 기구가 눈에 익어가던 아이들은, 금세 자기 위치를 깨치고 한 사람 몫을 해내기 시작했다. 할머님들 머리에 펌 로드를 하나 하나 정성스레 마느라 어느새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방울.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미용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과 오후에 걸쳐 아이들과 교사들은 총 여섯 분의 할머님들의 머리를 커트해 드리고, 염색도 해 드렸으며, 꼬불~ 꼬불~, 쉬이 펴지지 말라고 펌까지 단단히 말아드릴 수 있었다. 또 전날 디저트반에서 마련해 준 커피 원액을 가져가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할머님들께 직접 아메리카노를 타 대접하기도 하였다.
할머님들은 할머님들대로 머리 잘라주지 염색해 주지 펌도 해 주지... 게다가 당신들 눈에는 똥강아지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커피까지 내어 드리며 살갑게 구는 모습이 손자 못지 않게 귀엽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또 아이들 나름으로, 어린 시절 같이 놀고 돌봐 주시던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을 터인데, 그런 분들이 머리가 예쁘게 잘 되었다고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또 얼마나 마음 뿌듯했을까.
두 번째 출동은 진짜 오지 마을 조교리로
이번에도 학생들은 총 4명, 지난번과는 조금 달라진 면면으로 구성되었다. 이번에는 미용을 할 장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미용 트레이며 기자재를 조금 더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시내에서 1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미용실도 식당도 없다니!" 놀라면서도 아이들은 지난번 그때처럼 긴장되고 설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새로운 맵, 새로운 던전에 들어갈 때 그네들이 느끼던 흥분이랄까.
그리고 도착한 마을회관. 과연 회관은 사랑방과 마루, 부엌 정도만 딸린 큰 시골집의 구조였기에 자연 미용 장소는 회관 바깥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본 끝에 땔감용 목재가 수북이 쌓인 앞켠 마당귀, 해가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자리잡고 회관 안에 걸려 있던 거울을 떼 와 급한 대로 즉석 미용실을 꾸미기 시작했다. 미용 기구가 수북이 담긴 트레이며 등받이 달린 의자에 거울까지 갖추고 보니 그래도 머리하기에 부족함은 없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곳에 지난번처럼 할머님과 할아버님을 모셔와 미용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교사들의 손놀림은 무척 부지런했다. 이번엔 손님이 두 명 늘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님 일곱 분과 할아버님 한 분의 머리를 손질해 드리기 위해, 바리캉을 든 태석이(가명)는 쉴 새 없이 어르신들의 뒷머리며 옆머리를 손질하느라 내내 말이 없었다. 그건 펌 로드를 말아드리던 동해(가명)도, 퍼머액을 도포하고 머리에 타월을 두른 할머니들 곁에 앉아서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말벗을 해 드리던 대홍이(가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낯선 환경이지만 금세 긴장을 풀고는 스스럼없이 어르신들에게 다가가며 자기들의 할 바를 착실히 해 나가고 있었다. 특히 지난번 봉사에도 참가했던 태석이와 동해는 지난번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할 일을 찾고 처음 봉사에 나온 친구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까지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사이사이 지난번처럼 디저트반에서 준비해 준 커피 원액으로 재주껏 음료를 만들어 어르신께 대접하기도 하고, 점심 때는 휴무일임에도 흔쾌히 봉사팀과 함께한 학생식당의 노승희 선생님이 준비한 김밥 재료로 아이들과 교사가 한마음이 되어 김밥을 말아, 어르신들이 정성껏 끓여낸 국과 함께 든든하게 점심을 챙기는 동안, 사람들이 한데 뭉쳐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보는 사람이 푸근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냥 외갓집에 온가족이 다같이 모여 명절을 지낼 때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봉사 활동도 마무리할 수 있었고, 이 녀석들은 언제나와 같이 다음의 소감문으로 뿌듯함과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미용 봉사 활동을 마치며
그리고 이번 봉사 활동을 통해서 남에게 베풀 때의 뿌듯함, 잡은 손으로 스며드는 정, 미소 띈 눈빛으로 은근히 퍼지는 행복감을 느꼈을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함께하면 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를, 한층 어른으로 성장하였기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다음번 미용 봉사를 다시 전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