뻗는 힘찬 날갯짓
유아기시절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후로 바지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았던 소년에게 손가락 분리 수술을 지원하여 열등감 치유의 물꼬를 트고, 지능문제의 벽을 넘어 자격증시험에 합격하여 취업에 성공한 지도감독 우수사례 입니다.
상처받은 아이
이혼 후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엄마, 간간이 연락만 주고받는 폭력적인 아빠, 조카들을 동생으로 알고 사는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 무기력한 그 녀석은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갖고 싶은 굴착기 기능사 필기시험에 수차례 낙방하고,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지능 문제로 재검이 요청되어 정밀검사를 받고 난 뒤에는"저는 머리가 나빠서 못해요"라는 생각이 굳어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생후 2년경 뜨거운 김이 나는 밥솥을 만지다 화상을 입고 녹아내려 달라붙은 손가락은 성윤이의 위축된 마음처럼 바지 주머니 안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따뜻한 손길로 잡아줄 때 나타나는 효과
나는 먼저 소년의 화상치료를 위해 보호관찰위원 협의회장님께 상황을 알렸고, 흔쾌히 병원비 일체를 지원받기로 했다. 그리고 협의회장님과 결연도 진행 시켰다.
이제 기대되는 화상치료 수술을 생각하며, 보호자를 만나 제안하자 기뻐하는 엄마와 달리 성윤이는 갑자기 소극적인 모습으로 뒤로 숨어 버렸다.
"수술하다 죽으면 어떡해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소년은 단 한 번의 행운을, 성공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마저도 불행의 사고회로 속에 가둬버린 것이다.
나는 진정을 담아 성윤이를 설득하고 다독였다. 보호자의 관심만 있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렇게 주머니 속 감춰진 손이 되진 않았을텐데...라는 안타까움으로 말이다.
2022년 1월 보호관찰협의회의 지원으로 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드디어 예쁜 10개의 손가락을 모두 가지게 된 것이다. 감격의 세레모니로 담당자와 손깍지를 끼어보는 성윤이는 부끄러운 듯 웃음을 보인다.
넘어져도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2022년 4월경 토요일 밤 22시경, 성윤이의 음주 여부가 문득 걱정되었다. 갑작스레 성윤이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 불러내자 시간을 끌며 겨우 나왔고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있어 보인다.
"소주 딱 한 잔 만 했어요"라고 우기다 보호관찰소로 데리고 가 확인하니 혈중알코올농도 0.149%로 만취 상태였다.
특별준수사항 위반이다. 그날 밤 만취한 소년을 돌려보내며 월요일 아침 9시까지 출석을 지시했다. 지금이 소년의 변화를 끌어낼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나는 보호관찰 심층면담을 통해 성윤이의 상황을 파악하고, 직업훈련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보호관찰소에 출석시켜 허그일자리프로그램과 함께 굴착기기능사 필기시험 공부를 진행시켰으나 번번이 떨어졌고, 신검에서 지능 문제로 재검을 받고 현역 입대가 불가능해지자 "그것 보세요. 안되잖아요"라는 패배감은 골이 깊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시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이번 특별준수사항 위반 건으로 성윤이의 입에서 자발적으로 "다시 해볼게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월요일 아침 진술조서를 받기 시작! 닭똥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저는 머리가 나빠서 못해요..."
아니다. 성윤이는 정말 열심히 해본 경험이 없다. 하루에 몇 시간 공부해 보았는가?
담당자의 엄중한 제재조치의 제스처 속에 이 녀석 입에서 다급하게 "저 굴착기 기능사 준비 다시 해볼게요, 매일 보호관찰소에 나와서 다시 공부해 볼게요, 한 번만 믿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전의 불성실한 태도를 문제 삼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소년의 간절함이 이후 행동의 동력과 책임감, 성취감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또다시 실패한다면 소년에게 내일이 없을 것 같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성윤이는 다급하고 간절하게 기회를 요청했고, 급기야 담당자도 함께 시험에 동참할 것임을 고지하고 엄중한 약속을 했다. 닭똥 같은 눈물의 짐을 함께 짊어져 주고 싶었다.
성윤이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보호관찰소에서 3시간을 공부해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10분 전 출석하는 성실성을 보여주었다. 매일 14시~17시까지 정해진 분량을 공부하고 담당자 앞에서 문제를 풀며 자격시험 준비를 해 나갔다.
성윤이의 손에 관심을 가지면서 결연된 70세가 넘으신 위원회장님께서도 이 이야기를 들으신 후 "그럼 나도 공부해 봐야지"라고 말씀하시며 굴착기 기능사 시험에 도전했고, 맨 먼저 합격의 방아쇠를 힘껏 당겨주셨다.
"70세가 넘은 나도 했으니 성윤이도 해 낼 수 있어"라며 몸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우리!
2022년 5월, 한 달 남짓 미션 같은 매일의 공부를 마치고 성윤이의 떨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함께 들어간 시험장! 내가 먼저 시험을 보고 나와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시험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성윤이가 씩 웃어 보이며 엄지척! 을 한다. "휴~"드디어 합격한 것이다. 성윤이에게 필기시험 합격이란 남다른 의미이며, 한 컷의 값진 성공 경험의 주춧돌로 놓인 것이다.
시험장에서 돌아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풀린 웃음을 지어 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성윤이에게 실기학원비 마련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무보호복지공단에 직업훈련을 신청하여 50만 원을, 보호관찰위원 협의회에서 30만 원을 지원받아 실기학원비를 마련했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한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결국 2022년 11월, 세 번의 실기 도전 끝에 굴착기 기능사 자격증을 손에 쥐게 되었고, 몇 년 간의 낙방의 굴레 밖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변화를 위한 마지막 키워드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이제 소년원에 가는구나'라고 자포자기할 무렵 나는 버릴 수 없는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오늘 오후 곧바로 ㅇㅇ식품회사에 찾아가 면접 후 월요일부터 출근하여 3개월을 참고 이겨 낸다면...'의 조건절이다.
ㅇㅇ식품회사는 상시 인력을 모집하고 있으나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보호관찰대상자들은 쉽사리 취업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몇 개월 후면 보호관찰이 종료되는데, 아르바이트가 아닌 안정적인 직장 근무 경험이 있어야 건전한 사회적응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긴장감이 다 가시지 않는 당일, 성윤이는 부랴부랴 면접을 보러 갔고, 월요일부터 곧장 출근하게 되었다. 보호관찰이 종료되기까지 3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결근 없이 월 250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어엿한 직장인으로 근무한 것이다. 그리고 신경정신과에서 알코올 치료를 위해 처방된 약을 복용하며, 알코올 문제의 인식과 함께 금주 의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담당자를 신뢰하고 약속을 지켜나가면서 점점 당당해진다. 기특하게...
보호관찰대상자들에게 100점을 기대하지 않는다. 보호관찰은 10점짜리 아이에게 60점을 맞게 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과도 같다.
매일의 공부를 마친 후 여드름투성이 성윤이의 얼굴에 마스크팩을 해 주면 마냥 좋다는 표정이다.'나는 요리사'가족회복프로그램을 통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대하와 삼겹살 구이로 가족을 위한 쉐프가 되어보기도 하고, 담당자와 함께 치른 굴착기 시험에 합격하고 돌아오는 날 맛있게 먹었던 점심, 명절이면 훈훈하게 보내주셨던 멘토 위원님의 고기 한 상자 등...
이 모든 것이 소소하게 성윤이의 인생에 콕콕 작은 행복 씨앗으로 심겨졌을 것을 기대하며 웃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