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2)

-

힘들었지?
우리가 함께 할까?


이미지


마음 둘 곳 없던 아이들에게 멘토라는 이름으로 다가가 위로와 사랑을 건넨 순천청소년비행예방센터 멘토링프로그램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멘토'라는 단어를 흔히 듣게 된다. 상대를 격려하고 지지하며 성장을 돕는 사람, 그게 멘토의 의미다.
사람들은 그런 멘토를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일례로 2022년 워런 버핏과의 점심 식사권 경매는 246억에 낙찰되었다. 나 같은 범인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어쨌든 그 경매 낙찰자에게는 워런 버핏과의 1시간 남짓한 대화 시간이 그 낙찰 금액보다 더 귀하다는 것이었을 테다.

저렇게 어마어마하지는 않아도 사람들은 존경하는 선배와의 만남이든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든지,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멘토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를 이겨나갈 수 있는 새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조차도 버겁고 또 때로는 이러한 노력이 필요한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바로 그렇다.


갈 곳을 잃은 아이

절도로 순천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 교육 의뢰된 힘찬(가명)이는 8세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조부모, 아버지와 생활해 왔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헤어지고 지적장애마저 있는 힘찬이에게 쉽게 화를 내며 체벌하는 아버지는 두렵기만 한 존재였다. 마음 둘 곳이 없던 힘찬이에게 밖에서 떠돌며 어울리게 된 친구들은 그저 고마운 존재였고, 힘찬이는 친구들이 시키는 대로 자전거도 훔치고 식료품도 훔치며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2021. 11. 힘찬이는 법원에서 지시한 교육을 받기 위해 순천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 찾아왔고 우리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함께 가는 길을 택하다

법원에서 의뢰한 3일의 과정을 진행하며 조바심을 느끼는 것은 힘찬이가 아닌 나였다. 이대로 아이를 보내면 조만간 우리는 다른 비행으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인데, 그사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고 이 아이는 점점 더 사회와 멀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결국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교육 마지막 날 힘찬이를 불렀다. "힘찬아. 교육받느라 애썼지?"
"아니오. 재미있는 것도 많아서 괜찮았어요."
"그렇다니 다행이네. 이제 교육도 다 마쳤는데 힘찬이는 교육받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지 생각해 본 건 있니?"
"... 글쎄요... 그냥 친구들하고 놀고 뭐... 잘 모르겠는데요?"
"힘찬이랑 같이 놀던 친구들은 전부 다 재판받고 보호관찰도 받고 있잖아. 앞으로도 그 친구들이랑 계속 어울리다간 힘찬이도 같은 상황이 되지 않을까?"
"......"
"이번처럼 친구들이랑 잘못해서 경찰서에 다시 갈 수도 있는데... 다시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 것 같아?"
"...... 안 좋을 거 같아요."
그 순간까지 힘찬이는 변화의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멘토링 프로그램에 대해 안내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하여 드디어 변화를 향한 첫발을 뗄 수 있었다.


넘어질 수는 있어도 주저앉지는 않도록

힘찬이를 전문상담가인 이OO멘토와 결연하여 힘찬이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가던 어느 날, 갑자기 힘찬이가 쉼터에 입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의 학대로 쉼터에 의뢰된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러 멘토링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이 상황을 알게 된 다른 멘토 선생님이 쉼터 측과 연결해주어 어렵게 다시 힘찬이를 만나게 되었고, 힘찬이의 변화를 위해서는 부자 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아버지를 어렵게 설득하여 이들 부자를 위한 가족캠프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때로는 거칠기까지 한 아버지였으나 끊임없는 설득 끝에 결국 캠프에 참여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경험을 했다.
먼저 달라진 것은 힘찬이의 아버지였다. 폭력적으로 아들을 휘어잡으려 했던 아버지는 내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힘찬이의 상황을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변화의 가장 강력한 벽이라 여겼던 아버지는 그렇게 힘찬이의 조력자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삶이란 마냥 뜻대로 흘러가지 않기 마련인지 계속 좋아질 것만 같았던 힘찬이는 어느 날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라며,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간 꾸준히 학교 및 교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터라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국 일반학교에서의 졸업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위기청소년 관련 업무에 능통한 박00멘토의 도움을 얻어 가정형 Wee센터 입소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과정에서 힘찬이는 일반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학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학교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사소한 곳에서 큰 변화는 시작된다.

힘찬이가 멘토링을 시작한 지 15개월 채 접어드는 2023년 2월의 어느 날, 힘찬이의 아버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힘찬이가 큰일 날 뻔했어요!"
이런 전화를 받으면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쿵덕쿵덕...
"아버지, 무슨 일이예요?"
"힘찬이가 금은방 절도사건에 연루될 뻔했어요!"
문득 며칠 전 지역 방송에서 스치듯 본 화면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OO시에서 10대 청소년들이 금은방에 침입해 물건을 훔쳤다는.
"아버지 자세히 좀 말씀 해 보세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금은방 털던 날 OO이(힘찬이의 동네 선배)가 힘찬이에게 나오라고 전화했는데 안 나갔대요. 그 애들이 밤에 금은방을 턴 거예요. 애들이 나쁜 짓 할 것 같아서 안 나갔다네요."
가족보다 중요했던 친구, 선배들. 이들에게 휩쓸려 무분별하게 비행했던 힘찬이가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아이는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힘찬이의 아버지는 그렇게 연신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이의 변화를 반기는 변화된 아버지였다.
힘찬이는 그렇게 성장해가고 있다. 여전히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뒷걸음질 치지만 그래도 힘찬이를 향해 내미는 손을 잡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힘찬아. 여기까지 오는 길도 쉽지는 않았지?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할거야. 그러니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