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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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는 나름의 저항


힘들 때 선생님이 생각난다고 말하는
전주청소년비행예방센터를
다녀간 교육생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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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질문이든 대답은 "몰라요."로 일관하는 학생들이 5일 동안 머무는 곳! 전주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서 학교 부적응이나 초기 비행단계 청소년의 교육을 담당해오며 처음에는 알 수 없었던 "몰라요."의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만한 수업 태도, 나름의 '저항'

학교폭력으로 특별교육이 두 번이나 의뢰된 기수(가명, 남)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외모는 온순해 보였으나 교육시간 태도는 외모와는 사뭇 달랐다. 교육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었으며 어떤 질문에도 "아! 짜증 나.", "몰라요."로 일관하였다. 산만함과 거부감을 보이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만 했다.

기수의 태도에 대해 일부 수긍하고 공감하며 인내력을 갖고 상담을 진행하자, 마음속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나만 미워해요.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나만 교무실로 부르고요. 제 잘못이라고 해서 억울해요."라며 울먹였다. 학교폭력으로 특별교육이 의뢰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들어주고 기수의 불만에 공감해주었다. 다만, 학교 교사의 관점에서 기수를 평가하는 시각도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결국 기수는 "제가 잘못한 것이 맞네요. 지금부터는 수업 잘 받을게요."라며 태도 변화를 보였다. 교사에 대한 불만을 학습 태도의 불량으로 드러내는 심리를 파악하였고, 상담을 통해 교사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이후 기수가 나와 같은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것을 알았고 가끔 만나면 멀리서 달려와 먼저 인사하며 "선생님이 우리 학교 선생님하면 좋겠어요."라고도 하였다. 기수 엄마와도 친하게 지내며 기수의 학교생활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 기수 엄마로부터 다급한 소식이 전해졌다. 기수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였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다시 수일이 지난 후 기수 엄마가 전화로 "의식은 돌아왔는데 선생님이 와주시면 기수가 좋아할 거예요."라고 하였다. 기수의 회복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쁨에 달려갔고 잠깐 얼굴을 보고 돌아왔다. 수년 전 만난 내가 뭐라고 입가에 미소 짓는 기수의 모습에 뭔가 모를 힘이 솟았다.

고등학교 1학년생의 가장, 세상이 버겁다.

전주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 출석한 담호(가명, 남, 당시 고1년)는 교육 중에 언제나 의자에 바르게 앉은 채 잠을 자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지속되는 수업태도 불량이 센터에 의뢰된 이유였다. 교육 중에 잠을 자는 이유는 단순했다. 새벽 3시까지 배달 아르바이트가 그 이유였다. 고등학교 1학년임에도 가장의 역할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늦은 새벽에 잠자리에 들면 제때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 아예 잠을 자지 않고 센터에 출석하였고, 잠을 자지 않고 출석하는 것은 교육을 수료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학생과 가장이라는 두 개의 역할이 담호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에 따라 외형적인 수업태도 개선이 교육의 근본 목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두 가지 역할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담호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개별상담을 통해 성장 과정을 상세히 파악하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것에 주력하였다. 또한 수업태도가 교사에게 주는 인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공감 교육도 병행하였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상황의 원인을 알아보고, 학생과 가장 역할을 수행하는 담호를 수시로 격려하였으며, 5일간의 교육 수료 후에도 연락하며 만남을 유지하였다.

현재 담호는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 복무도 마치고 ○○대학교 ○○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여름방학 중에 센터로 찾아오겠다는 문자를 남기며 소소한 안부를 전하고 있다.

청소년기의 에너지, 어떤 방향으로 유도할까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로 교육 의뢰된 5명의 학생, 이 학생들은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된 대학교수, 대기업 이사 등을 부모로 두고 있었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비행명은 특수절도였다.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생일파티를 하던 중 매점 앞에 진열된 맥주를 훔쳤다. 이후 부모 등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이들을 더욱 빗나간 행동으로 몰아갔다. 5명 중 1명에게만 연락하더라도 모두 연락이 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음에도 부모들은 함께 있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막을 수 없다면 건전하게 함께 할 수 있도록 유도하자고 부모들을 설득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주말이면 다니는 교회로 불러 점심을 함께하였고,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친밀함이 쌓이자 아동시설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해낼 정도로 녀석들의 태도가 변하였다. 문제행동 재발을 방지하는 합리적인 대안으로써 긍정적 방향으로 청소년기의 활동성을 활용하도록 해결책을 제시하고 필요하다면 교사도 함께 참여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한 성과였다.

5명 중 4명은 제대 후 대학교에 재학 중이고 1명은 산업체 근로장학생으로 근무 중이다. 5명 중 한 명의 부모와는 현재도 부부 동반 식사를 하며 자녀 소식 등을 교환 중이다.

남장 차림의 여학생, 개성 아닌 상처가 원인

2016년 7월 전주청소년비행예방센터에서 만난 승연이는(가명, 당시 여고 1년) 불량한 학교 출결 문제로 대안교육이 의뢰된 학생이었다. 첫인상은 남성으로 착각할 만큼의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하였는데, 그러한 남장의 이유에 대해서는 '개성'이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개성 뒤에 숨겨진 남장 차림의 진짜 이유는 교육 4일 차에 알게 되었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가슴 속 깊은 상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6학년 남학생으로부터 3번의 성추행을 당한 것이었다. 성추행을 당한 이후 여성으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심지어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다고 하였다. 엄마에게 성추행 사실을 토로하며 도움과 위로를 기대하였으나 오히려 숨기려 하였고, 그러한 엄마의 반응은 제2의 상처로 승연이를 짓눌렀다.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으나 수치심과 무기력증만 심해졌다고 했다. 승연이의 혼란스러운 삶은 결석과 지각의 반복으로 이어졌고 결국 학교 부적응학생으로 분류되어 센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승연이의 치유방안으로서 전문기관을 탐색, 연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추행 피해의 과거를 다시 들춰내야 하는 것에 대한 승연이와 엄마의 거부감은 매우 컸고, 이는 담당자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설득 끝에 교육 마지막 날 전문기관의 심리치료 과정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남장 차림을 하는 원인을 알아보고 보호자와 사회자원의 도움을 받아 심리치료 연계, 교육 종료 후에도 연락을 지속하여 건전한 사회일원으로 성장하도록 도왔다. 교육 종료 후 2년 동안 매주 목요일 익산에서 전주를 왕복하며 상담 치료를 받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어엿한 직장인으로 생활 중이다.

전주청소년비행예방센터를 다녀간 교육생들을 대하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인내가 필요하고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볼 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교육생들을 시간 내어 상담하고 만나오면서 이들의 "몰라요."는 "내가 힘들어요! 내가 아프다고요!"라고 말하는 이유 있는 외침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몰라요."라고 말하는 교육생들에게 마중물 교육이 되어주고 싶다. 그 아이들의 숨겨진 잠재력과 꿈을 발견하여 이끌어내고 상처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을 도와주는 마중물 한 바가지와 같은 그런 교육을 하고 싶은 것이 나의 바람이다.